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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손·송·김》

연영애 손경희 송연호 김미향 | 2026.06.09 (화) ~ 2026.07.07 (화)

전시 서문

연·손·송·김: 긴 시간 함께하다, 서로의 시간 속 들여다보기

 

전시는 때로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들을 잠시 같은 공간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이다. 《연·손·송·김》은 청주를 기반으로 각자의 작업을 이어온 네 명의 작가, 연영애, 손경희, 송연호, 김미향의 작품을 UM GALLERY 진천 sight_B에 나란히 놓는다. 네 작가는 같은 지역의 예술 생태계 안에서 오랜 시간을 공유해 왔지만, 이들의 작업은 하나의 양식이나 세대적 언어로 쉽게 묶이지 않는다. 회화, 도자, 수묵의 디지털 이미지, 한지와 판의 물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며, 각자의 화면과 사물 안에는 저마다의 속도로 축적된 시간이 놓여 있다.

 

전시 제목 《연·손·송·김》은 네 작가의 성을 나란히 부른다. 특정한 주제 아래 작가들을 하나로 환원하기보다, 서로 다른 이름과 작업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태도다. 누군가의 성은 한 사람을 지시하는 가장 간결한 표식이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지나온 삶과 관계, 장소와 기억을 조용히 품고 있다. 이 전시는 네 개의 이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합치지 않고, 각자의 거리와 리듬을 유지한 채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도록 한다.

 

부제인 “긴 시간 함께하다, 서로의 시간 속 들여다보기”는 이 전시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여기서 ‘함께함’은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같은 지역에 머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지속의 시간이 서로의 작업을 통해 다시 비춰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오랜 시간은 단순히 과거의 누적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 안에서 다시 열리는 층이다.

 

이 전시가 열리는 UM GALLERY 진천 sight_B는 이러한 시간의 층위를 담아내기에 고유한 조건을 지닌 공간이다. 이곳은 완성된 작품만을 사후적으로 걸어두는 중립적 화이트 큐브가 아니다. 전시장과 주거 공간이 함께 구성된 구조 안에서, 작가는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하고, 그곳에서 축적한 시간과 사유를 다시 전시로 연결할 수 있다. 진천 sight_B에서 전시는 결과물의 발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머무는 시간, 작업이 발생하는 시간, 공간을 감각하는 시간, 그리고 관객이 그것을 마주하는 시간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전시의 의미를 확장한다. 서울의 갤러리 공간이 도시적 밀도와 압축된 감상의 경험을 제공한다면, 진천 sight_B는 보다 느린 속도와 긴 호흡을 제안한다. 작가는 이곳에서 잠시 일상의 속도를 바꾸고, 공간의 리듬 안에서 작업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머묾과 바라봄, 작업과 감상의 시간이 겹치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진천 sight_B는 작가에게는 체류와 작업의 장소가 되고, 관객에게는 완성된 작품 너머 그 작품이 놓인 시간과 공간을 함께 감각하는 장소가 된다.

 

따라서 진천 sight_B는 단순한 전시장이기보다, 작업과 전시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장소에 가깝다. 이곳에서 작가는 완성된 작품을 가져와 보여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머무는 과정 속에서 작업의 방향을 다시 조정하고, 공간의 조건을 작업 안으로 받아들이며, 그 결과를 전시로 확장할 수도 있다. 거주, 작업, 전시가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이 공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가능성이다. 이번 전시는 그 가능성을 본격적인 형식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연영애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시간의 간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975년의 회화와 2026년의 작업이 함께 놓일 때, 화면은 한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단순히 비교하는 장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회화가 어떻게 오랜 시간 뒤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희미한 형상, 번지는 색, 가느다란 선과 표면의 감각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질문처럼 남아 있다. 1975년의 《Untitled》가 한 시대의 감각을 품고 있다면, 2026년의 작업은 그 감각을 다시 호출하는 현재의 응답이다.

 

손경희의 도자 작업은 사물과 생활, 장식과 회화, 쓰임과 감상의 경계를 조용히 흔든다. 둥근 함의 형태는 생활 기물의 친밀함을 지니면서도, 그 표면 위에 놓인 꽃과 곤충의 이미지는 하나의 작은 회화처럼 펼쳐진다. 도자는 오랜 시간 흙과 불, 손의 과정을 통과한 사물이다. 그의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생활의 자리에서 출발해 다시 전시의 언어로 이동하는 사물로 읽히며, 진천 sight_B의 공간성과 특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송연호의 작업은 수묵의 감각을 동시대 이미지 환경 안에서 다시 사유하게 한다. 물과 먹의 번짐, 여백, 농담의 변화는 동양 회화의 오래된 감각이지만, 그의 화면에서 그것은 디지털 재현의 방식과 만나 새로운 시각적 층위를 형성한다. 송연호의 이미지는 붓의 흔적과 디지털 표면 사이, 손의 행위와 이미지의 재구성 사이에서 수묵이 오늘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김미향의 작업은 한지의 표면 위에 반복과 압력, 문지름과 떠오름의 시간을 새긴다. 꽃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는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 한지와 프로타주, 페이퍼 캐스팅의 물질적 과정을 통해 생성된 흔적에 가깝다. 화면 곳곳에 반복되는 식물적 형상은 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 드러나는 것과 눌려 있는 것 사이를 오가며 표면 아래에서 천천히 번지고 축적되는 감각으로 나타난다.

 

《연·손·송·김》은 네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결론으로 묶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매체와 세대, 감각과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는 장면을 보여준다. 긴 시간 함께한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온 사람들이 잠시 같은 장소에 머물며, 각자가 지나온 시간의 결을 서로에게 열어 보이는 일이다.

 

UM GALLERY 진천 sight_B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작가가 머물고, 작업하고, 전시할 수 있는 장소의 가능성을 보다 분명히 드러낸다. 《연·손·송·김》은 그 가능성 위에 놓인 네 개의 이름, 네 개의 매체, 그리고 네 개의 시간이 서로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전시이다.

연영애, Untitled, 100 x 80.3cm, Oil on Canvas, 1975
연영애, Untitled, Again, 100 x 80.3cm, Oil on Canvas, 2026
손경희, 과반, 28 x 10cm, 도자,상감, 2025
송연호, 水墨DigitalRepresentation25
김미향, Dance2101, 121 x 220cm, Paper Casting Hanji,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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