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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목 개인전 《북해(北海)로부터》

이종목 | 2026.05.27 (수) ~ 2026.06.23 (화)

이종목 개인전 《북해(北海)로부터》
전시 서문
이종목의 회화는 오래전부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경계를 향해 있었다. 한지와 먹, 물과 선, 산수와 추상의 구조는 그의 화면 안에서 단순한 조형 요소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 형상과 비형상이 서로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 지점을 감각하게 하는 사유의 언어이다. 작가에게 회화는 세계를 눈앞에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형상을 얻기 이전의 움직임을 더듬고,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방식을 화면 위에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이번 개인전 《북해(北海)로부터》는 작가의 최근 작업 가운데 〈북해로부터〉와 〈광합성인간〉 두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두 시리즈는 서로 다른 제목과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하나의 근원적인 질문이 흐르고 있다.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되며, 인간은 그 생명의 순환 안에서 어떤 존재로 다시 사유될 수 있는가. 〈북해로부터〉가 모든 형상이 이름을 얻기 이전의 시원적 장소를 향한다면, 〈광합성인간〉은 그 발생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다시 어떻게 자연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교수직을 마친 이후, 보다 온전히 자신의 작업 시간 안으로 들어선 뒤 선보이는 본격적인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교육자로서의 시간과 병행되어온 회화적 사유는 이제 전업작가로서의 집중된 리듬 속에서 다시 응축되고 확장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생애적 전환이 아니라, 작가가 오랫동안 지속해온 조형적 질문들이 보다 자유롭고 밀도 있는 방식으로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해로부터》는 그러한 전환 이후의 회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다.
작가가 말하는 ‘북해’는 특정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형상이 아직 이름을 얻기 전, 생명의 운동이 처음으로 잉태되는 시원적 공간에 가깝다. 북쪽의 바다라는 이미지는 차갑고 먼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종목의 화면에서 북해는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생의 장소이다. 그곳에서는 형상이 완성되기보다 생겨나고, 선은 대상을 설명하기보다 생명의 기척을 드러내며, 물과 먹은 화면 위에서 번지고 응결되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의 리듬을 만든다.
〈북해로부터〉에서 작가는 완성된 대상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형태가 생기기 직전의 진동과 공명, 보이지 않는 생명의 움직임을 붙잡고자 한다. 근작에서 구체적인 대상은 점차 화면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인위와 무위의 경계에서 한층 활달해진 선의 다발과 흔적들이다. 한지 위에 스며드는 물, 먹의 농담, 선의 중첩과 흐름은 화면을 하나의 닫힌 이미지가 아니라 생성의 장으로 만든다. 이때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의 발생 원리를 감각하게 하는 장소가 된다.
이러한 발생의 감각은 작가의 일상적 행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작가에게 거대한 산을 그리는 일과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맨손으로 흙을 고르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산과 텃밭, 우주와 손바닥, 물의 심연과 흙의 촉감은 서로 다른 크기의 세계가 아니라, 동일한 생명의 운동이 다른 스케일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산이 한 점의 떨림이 되고 작은 뜰이 우주의 생성만큼 광활하게 펼쳐지는 이 스케일의 전복은 작가가 오랜 시간 ‘즉비(即非)’나 ‘Holy Paradox’라는 언어로 천착해온 감각과 사유의 실체이기도 하다. 이종목의 회화에서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고, 큰 것은 단지 거대한 것이 아니다. 미시와 거시는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생명적 질서 안에서 함께 진동한다.
이에 비해 〈광합성인간〉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주체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 안에 놓인 존재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광합성이라는 말은 식물의 생명 활동을 가리키지만, 작가는 이 개념을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확장한다. 인간은 스스로 완결된 개체가 아니라 빛과 물, 공기와 땅, 시간과 호흡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광합성인간〉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 속에 함께 놓이는 상태를 상상하게 한다.
이 시리즈에서 인간은 풍경을 관찰하는 외부자가 아니라, 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통과시키며 세계의 순환에 참여하는 감각적 존재로 나타난다. 인간의 형상은 단단한 윤곽으로 고정되기보다, 선과 번짐, 흐름과 여백 속에서 자연의 일부처럼 열려 있다. 화면 안에서 인간은 자연을 소유하거나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변화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 또한 세계의 생성 과정 속에 놓인 하나의 생명적 리듬임을 환기한다.
따라서 〈북해로부터〉와 〈광합성인간〉은 각각 ‘근원’과 ‘순환’이라는 두 축을 이룬다. 〈북해로부터〉가 생명이 형상을 얻기 이전의 깊은 물의 자리, 곧 모든 것이 비롯되는 시원적 장소를 향한다면, 〈광합성인간〉은 그 생명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다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하나는 모든 형상이 발생하는 근원의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 근원으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다시 놓이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에서 두 시리즈는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이종목 회화가 오래 품어온 존재론적 질문의 양면으로 만난다.
이종목은 전통 동양화의 재료와 감각을 바탕으로 작업해왔지만, 그의 회화는 전통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한지와 먹, 물과 선은 그의 화면에서 동양 회화의 오래된 원리를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동시대적 사유의 장으로 확장한다. 발묵과 파묵, 번짐과 응결, 선의 긴장과 여백의 깊이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세계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조형적 사건이 된다. 그의 화면에서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생명의 가능성이 머무는 자리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이어온 조형적 실험과 사유가 하나의 질서로 정립되는 자리이다. 여기서 정립이란 단순한 정리나 회고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물음들이 다시 하나의 구조를 얻고, 작가의 현재 회화 안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종목은 특정한 양식의 완결을 향하기보다, 물과 먹, 선과 여백, 자연과 인간, 근원과 순환의 관계를 하나의 살아 있는 체계로 밀어 올린다. 《북해로부터》는 그 체계가 작가의 최근 회화 안에서 어떻게 응축되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선언보다 조용한 발생에 가깝다. 화면은 관람자에게 즉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기보다, 천천히 스며들고 번지며 감각의 깊이를 열어 보인다. 선은 사라지는 듯 이어지고, 먹은 멈추는 듯 흐르며, 여백은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형상의 가능성으로 남는다. 그 안에서 북해는 먼 바다가 아니라 지금 이 화면으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근원의 풍경이 된다.
《북해로부터》는 이종목 회화의 최근 도달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북해로부터〉와 〈광합성인간〉은 생명의 시작과 인간의 자리를 함께 묻는 두 축으로서,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세계의 경계를 다시 세운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는 회화가 아니라, 자연의 생성과 순환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회화를 마주하게 된다.
광합성 인간, 41x32cm, 캔버스에 아크리릭,목탄, 2026
북해로부터, 117x91cm, 캔버스에 아크리릭, 2026
북해로부터, 138x93cm, 캔버스에 아크리릭,목탄, 2026
북해로부터, 162x130cm, 캔버스에 아크리릭, 2026
북해로부터, 162x130cm, 캔버스에 아크리릭,목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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